영화 「조커: 폴리 아 되」 감상
개봉 전 어느 날, 조커 2가 뮤지컬 영화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커와 뮤지컬,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 조합에 당혹스러웠지요.
개봉 후에 본 영화는 장르는 문젯거리도 아닐 만큼 제 예상 영역을 벗어나 있었습니다.
저는 재미있게 봤고 제 안에서는 괜찮은 영화로 랭크되었지만, 영화는 크게 호불호를 타리라 생각합니다. 전작도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히어로 무비 팬에게도 추천을 망설이게 되네요.
내용과 형식에 각각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동시에 인상적인 점이기도 하기에 차례로 얘기해 보려 합니다.
우선, 내용 면에서 빌런 ‘조커’ 이야기를 기대하면 아마 크게 실망할 것 같습니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애정이 많다면 실망이나 불호를 넘어 이 이야기에 왜 조커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화가 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 영화는 ‘조커’보다는 ‘아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아니, 영화를 보고 난 후엔 영락없이 조커 이야기라 생각한 전편조차 아서 이야기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그만큼 아서에게 조명을 비추는 이야기입니다.
부제 ‘폴리 아 되(Folie à deux)’는 ‘둘의 망상’ 정도의 뜻이고, 영화는 ‘리 퀸젤/할리퀸(레이디 가가)’과 조커가 공유하는 꿈, 혹은 망상을 이야기의 대들보로 삼습니다.
하지만 그 아래서는 아서인가 조커인가 하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아서의 변호사 ‘메리앤 스튜어트(캐서린 키너)’는 사람 아서를, 리는 상징 조커를 추구하며 반목합니다. 당사자인 아서는 이런 주위에 따라 흔들리며 조커로 기울기도 하고, 아서로 돌아오기도 하지요.
특히 리가 어떻게 아서에게 접근해 그를 조커로 바꾸어가는가는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한 부분입니다. 전편에서 아서가 조커가 되는 과정은 길고 힘겨웠는데, 이번에 아서를 조커로 만드는 방법은 쉽고 가벼워 대비가 됩니다.
아서와 조커의 싸움은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나타납니다.
영화는 ‘나와 내 그림자(Me and My Shadow)’라는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전작에서 보인 조커의 행적과 함께, 나(아서)와 그림자(조커)가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 다투는 내용입니다. 웃으며 본 가벼운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영화를 본 후에는 사뭇 무겁게 다가옵니다.
오프닝 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제목도 결이 비슷합니다. 면도를 마친 아서의 얼굴을 비추던 화면은 JOKER라는 글자로 뒤덮이죠. 돌이켜보니 조커가 아서를 덮어버린 느낌입니다. 마지막에는 이 제목이 어떻게 표시되는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엔딩 역시 비슷한 의미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해 표현하자면... 아서의 최후와 조커의 탄생이 한 화면에 잡히는데요. 화면의 포커스는 아서에게 또렷하게 맞춰져 있습니다. 뒤쪽으로 보이는 조커는 흐릿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서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족으로, 이때 배경 음악으로 ‘That's Life(그게 인생이지)’가 흘러나오는데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어요. 전편도 같은 음악으로 끝을 장식했으니 영화의 주제곡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서에게 너무하지 않나요😭
이후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True Love Will Find You In The End(진정한 사랑이 결국 당신을 찾아낼 거예요)’에는 마음이 참 복잡해집니다.
두 번째로 형식 면에서 잘 만든 뮤지컬 영화를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뮤지컬 영화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평가라면 모를까, 기존 뮤지컬 영화에 기대하는 바와는 거리가 있거든요.
영화에서 왜 말이 아닌 노래를 이용할까요? 저는 ‘환상(Fantasy)’을 위해서라 생각합니다. 말이 일상적, 현실적 소통이라면, 노래는 화려한 환상과 찬란한 꿈, 과대한 감성을 예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폴리 아 되의 노래 장면은 애매합니다.
노래를 부르는데 텁텁합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신나지도 않고, 절절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영화가 끝나도 뇌리에 남는 노래 장면이 없습니다.
몇몇 장면은 나름대로 상상의 무대를 활용합니다. 예고편에도 나왔죠. 작은 화면으로 예고편을 볼 때는 그럴듯해 보였는데, 영화관에서 큰 화면으로 보면 이 무대가 무척 허술합니다. 옛날 TV 쇼에서 쓰던, 판자로 만든 싸구려 배경 같아요.
다만,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대부분 뮤지컬 신이 조커의 망상인 만큼, 환상도 주체를 넘어서지 못하고 투박한 것 아닐까요? 꿈과 희망으로 반짝이는 환상은 조커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어울리지도 않을 테고요.
게다가 폴리 아 되에서 노래는 단순히 말의 대신이 아닙니다. 조커가 할리퀸과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후반 아서는 말을, 할리퀸은 노래를 구하는 장면에서 확실해지지요.
뮤지컬을 재료로 사용하지만, 뮤지컬이 돋보이게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하면 좋을까요?
그래도 아서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Gonna Build a Mountain(산을 쌓을 거야)’만큼은 기억에 남습니다.
이 노래는 앞에서 이미 조커와 할리퀸이 한차례 부른 곡입니다. 신나는 분위기로 산을 쌓겠다, 내 세상을 만들겠다며 노래하지요.
그리고 후반, 아서가 같은 노래의 다른 소절을 부르는데요.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신의 구원을 바라는듯한 아서의 목소리에 잠시 다른 노래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전편도 독특했지만, 이번에도 만만치 않습니다.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온 조커가, 아서가 되어 가파른 계단을 다시 올랐습니다. 거길 다시 오를 줄 누가 알았겠어요?
계단을 오른 끝에 마주한 결과는 참담해 보이지만, 그 간절한 선택에 응원을 보냅니다.
영화 정보
관람 정보
- 15세 이상 관람가 (주제, 폭력성, 모방위험)
- 쿠키 영상 없습니다.
예고편
관람 기록
- 조커: 폴리 아 되
- Joker: Folie a Deux
- 롯데시네마 기흥 1관
- 2024년 10월 1일
- ★★★☆ 망상 혹은 외로움, 아릿한 선택지
- 조커: 폴리 아 되
- Joker: Folie a Deux
- 롯데시네마 기흥 7관
- 2024년 10월 12일
- ★★★☆ 오프닝이 무겁게 다가온다
이미지 출처 : CGV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