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브스턴스」 감상
볼까 말까 오래 고민한 영화입니다. 예고편이 마음에 들어 예매했다가 매우 고어하다는 후기에 취소하고, 고어물보다 크리처물에 가깝다는 후기에 다시 예매했죠.
결과적으로, 무리 없이 잘 보고 왔습니다. 인상적인 장면이 참 많은 영화였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보길 잘했어요.
일단 무서운 영화는 아닙니다. 점프 스케어나 공포 영화 특유의 긴장감 조성은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의 몸이 크게 변형되거나 훼손되는 고어함은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잔인함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괴기스러움에 가깝습니다. 제겐 다행이었죠. 사고로 다리가 뚝 꺾이는 현실적인 장면은 못 보겠는데, 눈알이 다섯 개가 되고 등에서 팔이 솟아나는 비현실적인 장면은 대체로 문제없이 보거든요.
물론, 피 칠갑이나 흘러나오는 내장 등 표현은 과격합니다.
제목인 서브스턴스(substance)는 물질, 재료, 본질, 실체라는 뜻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더 나은 나’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혹은 거기서 태어난 ‘더 나은 나’를 서브스턴스라고 합니다. 새로운 나를 만들기 위한 물질이라 읽히기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내가 추구하는 본질이라 들리기도 합니다.
여성성의 상품화
여러 가지 주제 중 첫 번째는 여성성의 상품화겠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과거 오스카를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린 유명한 배우입니다.
하지만 인기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사람들은 엘리자베스를 잊어가고, 50세가 된 그녀에겐 통속적인 에어로빅 쇼 진행자라는 위치마저 불안합니다.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는 엘리자베스를 대신할 존재를 찾습니다. 젊고 섹시한 여성이죠.
이 내용이 진행되는 장소가 재미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엘리자베스는 화장실로 향하는데 하필이면 여자화장실이 수리 중이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 반대쪽 남자화장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비의 폭언, 그러니까 엘리자베스에게 더 이상 여성적 상품성이 없다는 험담을 듣게 됩니다. 하비가 떠난 후 엘리자베스는 묵묵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양쪽 모두 엘리자베스가 여성성을 상실했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최소한 그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입니다.
더불어 이 화장실은 촬영장에서 이어지는 긴 복도 끝에 있는데요. 복도 벽에는 엘리자베스가 진행한 프로그램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타임라인인데요. 그 끝에서 남자 화장실을 택했다는 것도 재미있죠.
참고로 이 복도는 영화 후반까지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하비는 게걸스레 새우를 먹습니다. 막말을 이치인 양 떠벌리다, 엘리자베스의 반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뜨지요. 그리고 그 뒤에는 대량의 빈 새우 껍질이 지저분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는, 이후 엘리자베스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등이 굽은 모습이 여러 번 나오는데요. 특히 서브스턴스 복용 후 바닥에 널브러진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테이블에 버려진 새우 껍질 같습니다.
껍질 안에서 나온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새우는 여성이라 봐도 무방하겠지요. 하비가 새우를 먹고 껍질을 버린 장면은, 그가 얼마나 많은 여성을 이용했고 그 후엔 어떻게 버렸는지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하비는 남자, 미디어,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모두 대표할 테고요.
당신은 하나다
서브스턴스 안내 비디오에서 달걀로 실험을 합니다. 일반적인 달걀노른자에 약을 주사하면 새로운 노른자가 뿅 튀어나옵니다. 새로 생긴 노른자는, 원래의 노른자보다 동그란 모양과 매끈한 광택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브스턴스 로고도 이와 비슷합니다. 노란 반원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하나가 조금 더 동그랗습니다. 새로 생긴 동그란 노른자처럼요.
반원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어 빨리 감기 기호⏩나, 반원에 새로운 반원이 더해진 모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방향을 생각하면 좌우가 바뀌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서브스턴스가 강조하는 ‘당신은 하나다(YOU ARE ONE)’라는 구문을 생각하면 원을 반으로 잘라 반원 두 개가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다’라는 문장은 해석 나름입니다. 두 개의 몸으로 하나의 시간과 삶을 나눠쓰기 때문에 혹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종속적 개체라서 하나일까요? 영혼과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일까요?
개체로서 하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보이기는 합니다. 하나의 가족처럼요.
엘리자베스에게서 태어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거릿 퀄리)’는 엘리자베스가 원했던 대로 스포트라이트 아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빛나는 활동을 합니다.
한편, 엘리자베스는 집에 머물며 청소를 하거나 외진 골목을 지나 서브스턴스 리필을 가져오는 등 뒷바라지를 하지요.
물론, 한쪽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이 불평등한 균형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지 않는 공동체의 파탄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 프로그램을 끝내려 할 때, 프로그램 관리자는 말합니다. 끝낼 수 있지만 당신은 혼자가 될 것이라고요. 서브스턴스의 시작으로 ‘하나’의 가족을 이루었다면, 서브스턴스의 종료로 가족이 깨지고 ‘혼자’가 되는 셈입니다.
엘리자베스가 수를 향해 ‘네가 없으면 안 된다’고 외치는 모습은 헤어져야 마땅한 연인을 붙잡는 모습 같아 안쓰럽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엘리자베스가 현실이라면, 수는 이상이며 동시에 과거입니다. 젊고 아름답고 모두에게 주목받는 빛나는 나라는 이상이자 과거지요.
일반적으로 ‘더 나은 나’라는 이상은 미래에 있는데, 엘리자베스의 이상은 과거에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되돌려 젊음을 되찾을 수는 없는데 말이죠.
불가능한 이상은 현실을 부정하게 합니다.
현실의 엘리자베스는 충분히 아름답지만, 수의 상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하려다가 수의 미모가 빛나는 사진에 자신을 잃고 주저앉습니다. 이제 엘리자베스는 삶의 영위를 포기하고 소파에 앉아 지루한 7일의 시간을 버티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경력도 재력도 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텐데, 스포트라이트 아래 빛나는 자신의 이상만큼은 엘리자베스가 이룰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엘리자베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빛나던 과거의 영광을 찾아갑니다.
그 외엔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양, 그녀는 자신의 별 위에서 웃으며 안식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애잔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영화는 시원스레 남은 오물을 닦아냅니다. 여러 가지 메시지가 들려 마음이 복잡해지는 강렬한 엔딩이었습니다.
서브스턴스
서브스턴스는 마약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지만 약이 떨어지면 현실은 엉망진창, 끊어야 하는 걸 알지만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인생을 스러지게 합니다.
엘리자베스에게 서브스턴스가 없었다면, 시간이 걸려도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걸었을지도요.
영화 정보
관람 정보
- 청소년 관람불가(선정성, 폭력성, 공포)
- 쿠키 영상 없습니다.
예고편
관람 기록
- 서브스턴스
- The Substance
- CGV 기흥 5관
- 2024년 12월 14일
- ★★★★☆ ‘더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나’라는 괴이함
- 서브스턴스
- The Substance
- CGV 동수원 3관
- 2024년 12월 30일
- ★★★★☆ ‘더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나’라는 괴이함
이미지 출처 : CGV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