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루탈리스트」 감상
상영 시간이 3시간 35분으로 꽤 길지만, 중간에 인터미션이 15분 포함되어 있는지라 장시간 관람에 대한 부담은 적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워 지루할 틈도 없었습니다.
서막 OVERTURE
영화 제목 ‘브루탈리스트’는 건축 양식인 ‘브루탈리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노출 콘크리트가 떠오르는 양식인데요. 영화 속 인물과 시대적 배경은 물론 영화의 스타일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브루탈리즘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빠르고 효율적으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두되었습니다. 튼튼한 건물을 싸고 빠르게 건축해야 했기에 강철과 콘크리트가 중심이 되었고, 기능과 무관한 장식은 배제하며 실용과 합리를 지향했지요. 그 대신 모듈의 반복, 기하학적 구조, 비대칭 형태, 양감 등으로 특유의 미를 구축합니다.
말로 하니 번잡한데, 브루탈리즘 건축물 사진을 찾아보면 어떤 양식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말한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육면체를 만드는 것’이라는 대사가 떠오르네요.
제1막: 도착의 수수께끼 THE ENIGMA OF ARRIVAL
영화는 건축가 라즐로의 삶을 따라갑니다. 라즐로가 자유를 찾아 미국에 도착하여 브루탈리즘 양식으로 커뮤니티 센터를 짓는 이야기가 큰 흐름을 차지합니다. 제목의 브루탈리스트는 라즐로를 의미하는 것이겠죠.
동시에 인물과 이야기를 넘어 영화 그 자체가 브루탈리즘을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브루탈리즘이 건물의 소재와 기능을 감추지 않고 보여주는 것처럼, 영화는 인물과 인생의 미추를 고스란히 그려냅니다.
라즐로는 위대한 건축가이지만, 그 개인의 삶이 훌륭하거나 주인공답게 그려지진 않습니다. 흉한 모습도 적나라하게 표현되는데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의 인생을 이루는 일부라고 말하는 것 같지요.
또 하나의 주요 인물인 ‘해리슨 리 밴 뷰런(가이 피어스)’은 어떨까요? 은인, 속물, 악당까지 다면적인 모습이 다 드러납니다.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해리슨은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돈 얘기를 싫어하는 거부 같지만 비용 절감의 화신이고, 장서가 대단하지만 읽지 않고, 와인을 수집하지만 다 마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흥미를 잃습니다. 다분히 양면적이고 비틀린 사람이죠. 라즐로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흐름이라면 해리슨은 이를 가로지르는 댐 같습니다.
한편 영화에는 모듈화의 편린도 느껴집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며 쌓여가거든요.
예를 들어, 해리슨이 라즐로 부부를 대하는 방식이 있겠네요. 해리슨은 첫 만남에서 라즐로를 무시합니다. 그에겐 일개 이민자이자 노동자로만 보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후 라즐로가 바우하우스 출신의 유명한 건축가라는 것을 알고는 태도가 변하지요. 이것은 라즐로의 부인 ‘에리제벳(펠리시티 존스)’에게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라즐로와 그의 조카 ‘조피아(래피 캐시디)’, 해리슨과 그의 아들 ‘해리(조 알윈)’에게도 비슷한 구성이 있습니다. 라즐로와 조피아, 해리슨과 해리는 일종의 분신 같은 존재인데요. 해리가 조피아를 짓밟는 일은 해리슨과 라즐로 사이에서도 반복됩니다.
이런 모듈의 반복은 무척 슬프게 다가옵니다. 라즐로의 아픔은 에리제벳과 조피아의 아픔이고, 아마도 모든 이민자들의 아픔이었을 겁니다. 분명 고유한 한 사람 한 사람인데 ‘이민자’ 혹은 ‘난민’이라는 틀로 찍어내니 구별되지 않는 개체가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제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 THE HARD CORE OF BEAUTY
해리슨이 기획하고 라즐로가 설계한 커뮤니티 센터는 영화의 또 다른 주제인 것 같습니다.
가장 웃긴 부분은 시작과 끝이겠지요. 지역사회 주민들이 모이고 ‘배울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겠다고 시작했는데, 해리슨의 변덕과 자금상의 이유로 엉뚱한 목적의 방만 생기고 정작 ‘도서관’은 취소되었습니다.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천장과 십자가겠죠.
라즐로는 건물의 층고를 아주 높게 잡습니다. 비상한 높이에 의아해하는 에리제벳에게 라즐로는 이야기합니다. 건물에 들어온 사람들은 위쪽을 보게 될 것이라고요.
설계 발표에서 라즐로는 빛이 만드는 십자가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손전등으로 태양을 대신하며 건물에 어떤 십자가가 생기는지 직접 보여주는데요. 관객은 이 십자가를 보지 못합니다. 카메라는 십자가 대신 해리슨의 얼굴을 보여주죠.
빛으로 만든 십자가라니 상상만으로 멋진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막상 해리슨의 표정은 모호합니다. 해리슨이 건물에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해리슨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입니다.
참고로 자금면에서도 천장과 십자가는 해리슨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해리슨이 천장을 낮추려 하자 라즐로가 사비를 들여 높이를 고수했고, 십자가는 기독교적 상징물을 원한 시(市)의 지원금으로 만들어졌다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제2막의 끝에서야 이 십자가를 볼 수 있습니다.
해리슨의 실종으로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로, 천장에서 내려온 빛은 조용히 제단에 십자가를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해리슨의 실종이나 이야기는 다 잊고 십자가의 근원을 찾아 위를 바라보게 됩니다. 라즐로가 원했던 그대로요.
이 장면은,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성장한 조피아가 이야기하죠. 중요한 것은 여정이 아니라 목적지라고요. 라즐로가 겪은 고난의 여정 끝에 결국 도착한 목적지는 건축이고 예술이고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한순간을 위해 3시간 넘는 길을 달려왔다고. 라즐로가 유한한 삶에서 무한할 결과를 남긴 것처럼, 몇 시간의 영화는 영원할 감동을 남겼네요.
에필로그 EPILOGUE
영화 이상으로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오프닝 크레딧은 아주 독특합니다. 양도 많고, 형태가 건물 같습니다. 앞에서 브루탈리즘 양식은 건물의 소재와 기능을 감추지 않고 보여준다는 얘기를 했는데요. 오프닝 크레딧도 비슷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 즉 사람을 일찌감치 드러내는 모양새입니다.
차를 타고 도시의 건물들을 지나치듯 가로로 흘러간 오프닝 크레딧과 달리, 엔딩 크레딧은 비스듬히 구성되어 대각으로 올라갑니다. 바우하우스의 타이포그래피가 떠오르는 이 스타일은, 한편으로는 라즐로의 건물에서 위를 바라본 사람들의 시선과도 같지 않나 싶습니다.
이외에도 장엄하고 멋진 장면이 많습니다. 하나하나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요. OTT로 나와도 몰입도가 다를 영화입니다. 꼭 영화관에서 관람하세요!!
영화 정보
관람 정보
- 청소년 관람불가(선정성, 약물, 모방위험)
- 쿠키 영상 없습니다.
예고편
관람 기록

- 브루탈리스트
- The Brutalist
- CGV 오리 8관
- 2025년 2월 9일
- ★★★★★ 고난의 여정 끝 모두가 하늘을 보게 만드는 목적지
이미지 출처 : CGV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