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문」 감상
주인공 ‘요리코(츠즈이 마리코)’는 진부하면서도 재미있는 인물입니다.
요리코는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가정주부였습니다. 단독주택에 나름대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식구들을 위해 정갈한 식사를 준비합니다. 자리보전하고 있는 시아버지 수발도 들고 있습니다. 요리코가 무얼 하든 도울 생각이 없는 남편과 아들을 보니 가부장적인 가정인 것 같습니다.
일본인에 대한 인상이 흔히 그렇듯, 요리코는 기가 센 사람이 아닙니다. 이웃집 고양이가 정원을 어지럽혀도 제대로 주의를 주지 못하고, 누군가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깜짝 놀라 움츠러듭니다.
한편 요리코에겐 음험한 구석도 있습니다. 방사능 오염 문제를 걱정하며 아들에게 절대 수돗물을 마시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병든 시아버지의 밥을 만들 땐 수돗물을 사용합니다. 다른 가족들 눈치를 슬쩍 보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오사무(미츠이시 켄)’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정원의 화분에 물을 주다 그대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일본의 사회 문제인 자발적 실종(죠하츠)이 떠오릅니다.
남편이 사라진 요리코의 삶에도 큰 파문이 일었겠죠. 요리코는 남편 대신 사이비 종교에 의지하며 삶과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합니다. 시아버지와 아들까지 각자의 이유로 집을 떠난 후, 요리코는 홀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종교단체에서 산 수상한 물을 잔뜩 쌓아놓긴 했지만요.
또다시 어느 날, 사라졌던 남편이 다시 나타나며 요리코의 삶에는 파문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미안해하던 남편은 금세 시중을 바라고, 치료비를 요구하며, 요리코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더럽힙니다. 요리코가 바라는 잔잔한 평화는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은 보통이 아닌 여자친구를 데려오고, 파문은 더해져만 갑니다.
유일하게 요리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것은 동료이자 친구인 ‘미즈키(키노 하나)’입니다. 요리코에게 거침없고 통쾌한 조언을 건는 씩씩한 사람이지만, 미즈키 역시 재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요리코와 미즈키가 어떻게 회복해나가는지를 통해 우리에게도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서로 도우라고 말이죠. 상대의 아픔을 살피고 돌보며, 관용을 베풀라 말합니다. 그것이 당신을 평온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하리라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진상 고객의 억지를 받아주는 요리코와 역시 너네 고양이었다 지적하는 요리코는 결이 같습니다.
더불어, 엔딩 시퀀스가 참 인상적입니다.
회복하고 성장한 요리코는 아마도 사이비 종교에서 벗어나고 가족과도 새로운 관계를 정립한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집에 홀로 남게 됩니다. 각자의 삶과 죽음이 있으니까요. 아들은 전에 하던 플라멩코를 다시 해보라 권하고 규슈로 돌아갔습니다.
모두가 떠난 후, 요리코는 플라멩코를 춥니다. 방사능을 걱정하며 절대 맞지 말라던 빗속에서요. 아침마다 정성스레 다듬던 고산수 정원을 흩트리며 정렬과 애환을 담은 춤을 펼치고, 종국에는 집을 나서 거리에 서지요.
가족이란 무엇인지, 특히 그 안에서 어머니란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요리코는 남을 돕고, 포용하고, 용서하고, 인정하며 독립적인 자기 자신을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짝― 하는 짧고 강한 박수 소리로 시작합니다. 이 박수 소리는 요리코가 신나게 내달리는 순간마다 다시 등장하는데요. 엔딩의 박수 소리는 그런 요리코의 앞날을 응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영화 정보
관람 정보
- 12세 이상 관람가(주제, 대사)
- 쿠키 영상 없습니다.
예고편
관람 기록
- 파문
- Ripples
- CGV 오리 8관
- 2025년 1월 15일
- ★★★★ 섬세하게 만든 고산수처럼
이미지 출처 : CGV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