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관람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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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예고편에서 '8천 겁의 인연이 쌓였다'는 자막이 나오는데, 실제 대사는 8천 겹(layers)이 쌓였다고 말해요. 관념적 시간인 겁(劫)을 설명하지 않고, 양적인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게 재치 있다 싶더라구요. 영화에선 '8천 번의 생'이 덧붙었지만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닌데, 독특한 소재와 위의 대사 때문에 보고 왔습니다.
참고로, 불교에서는 1천 겁 동안 선근(=선한 인과)의 인연을 쌓아야 같은 나라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연인이 되려면 7천 겁, 가족은 8천 겁, 스승과 제자 관계에는 1만 겁이 필요하다고 하구요. 만남이란 그만큼 굉장한 일이니 사람과 연을 소중히 하라던 선생님 말씀이 떠오르네요.
소개
관람 정보
- 12세 이상 관람가 (주제, 약물)
- 쿠키 영상 없습니다.
줄거리
12살 서로 좋아하는 친구였던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 나영이네 가족의 이민으로 둘은 둘 사이의 감정을 깨닫기도 전에 헤어집니다.
그리고 12년 후. 우연한 기회에 나영은, 해성이 SNS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여전하지만, 화면으로나마 다시 인연을 이어가는데요. 이 인연의 끝은 어디를 향할까요?
예고편
감상
질척이는 연애사가 아니라 잔잔한 삶의 궤적에 어느날 날아든 찰나의 꿈같은 이야기였어요. 예고편이랑은 또 다른 맛이 있어서 즐겁게 봤습니다.
영화에서 감정적 표현이 많은 인물은 해성이지만, 실제로 영화는 나영의 삶 이야기였다고 생각해요. 한국을 떠나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었고, 관심사가 비슷한 착한 남편을 만나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데, 옛 인연인 해성이 먼 거리를 넘어 훌쩍 다가오거든요. 그리고 그녀에겐 일상일 뉴욕을 배경으로, 묘하게 탈일상적인 이야기가 흘러가지요.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한 얘기도 잠깐 나오구요.
몽환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었는지, 혹은 뭔가의 문제였는지, 영상도 대체로 선명하지 않고 살짝 뿌연 느낌. 화면이 왜 이렇지 툴툴거리긴 했는데, 생각해보면 영화랑 잘 어울렸어요. 부드러운 배경과 음악까지 어우러져 한층 분위기가 살았구요.
영화는 전체적으로 잔잔해요. 사람 사이의 갈등은 거의 없고, 갈림길에 선 어린 나영과 해성처럼 선택의 기로에서 내적 갈등이 대부분이거든요. 심지어 갈등의 표현도 대체로 차분하고요.
다만, 연기가 뭐랄까요, 영화적인 느낌이 약해요. 보통 영화는 이미 정해진 대화가 부드럽게 흘러가잖아요? 말문이 막히거나 말을 더듬는 것도 흐름이 있구요. 한데 이 영화는 대사나 행동이 진짜 현실처럼 툭툭 튀어요. 교포 2세 특유의 억양과 표현도 그렇구요. 보기에 따라 현실적이라 느낄 수도 있고, 어색하다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전자.
12살, 24살, 36살 등 시간대가 쭉쭉 넘어가는데도 인물은 한결같고 상황도 끊김 없이 매끈하게 이어져서 좋았어요. 걸림 없이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 인연도 소재로 시작부터 끝까지 적절히 사용되었구요.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인물은, '진짜 한국인'인 해성. 해성이 뭔가 선택할 때마다 납득이 안 가더라구요. 초중반에, 공돌이인데 영어보다 중국어가 도움이 된다는 둥 몰입을 까먹고 시작한 부분이 많아서 더 부정적으로 비쳤을 수도 있긴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제 안에서는 '어렸을 적 감정에 매몰되어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혼자만 다 쏟아낸 미친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예고편에도 포함된 '네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면...' 대사가 나온 시점과 상황은 최악. 제 안의 유교관이 욕을 하며 뛰쳐나옵디다. 예고편에서 봤을 땐 로맨틱하다 생각했는데, 하필 저 대사를 치는 시점이...
솔직히, 해성과 나영 이야기보다... 나영의 남편인 '아서(존 마가로)' 관점의 이야기가 더 좋다고 느낄 분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불편해 보일 정도로 꼭 맞는 옷에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고정시킨 해성과 교포 느낌 물씬 나는 할랑한 옷차림의 나영이 만나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장르 특성상 영화관에서 꼭 봐야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관 3사에 쿠폰을 뿌린듯 하니 고려해봐도 좋겠네요. 다시 볼 계획은 없습니다.
관람기록
- 패스트 라이브즈
- Past Lives
- CGV 기흥 3관
- 2024년 3월 6일
- ★★★ 남편이 천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