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후 네시」 감상
영화의 주요 내용은, 정년퇴직 후 외진 전원주택에서 한적한 삶을 기대한 ‘정인(오달수)’과 '현숙(장영남)' 부부가, 매일 오후 4시에 찾아와 평화를 깨는 이웃을 만나며 생기는 소동입니다.
얼핏 웃긴 이야기일 것 같은 소재인데요. 장르가 코미디도 스릴러도 아닌 드라마라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영화는 굉장히 독특합니다. 이웃의 방문에는 목적이 없고, 대화는 대화로 작동하지 않으며, 관객은 저들이 '왜' 저러는지 생각할수록 영화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원인과 결과가 명료한 이야기는 아닌 만큼 해석하기 나름이겠네요.
영화는 정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에 반대하며,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면 불행해질 것이라 말합니다. 영화가 갈 길이 보이지요.
시작점에서 정인은 '진짜 자신'을 감춘 위선적인 사람입니다. 이는 여러 가지로 표현됩니다.
예를 들어, 주차된 차를 빼다 물류 차량과 접촉 사고가 발생하는데요. 상대가 음주 상태였음에도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이라 낮춰보며 신고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아량으로 내보입니다.
반대로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옆집을 보고도 이해하며 넘어가는 것은 옆집 주인이 '의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죠.
정인은 이웃의 반복된 방문에 불쾌해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상상해 붙이며 이웃을 변호합니다. 침입자를 물리치자는 부인의 제안에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저어하는 모습을 보면, 정인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인이 진짜 자신을 찾는 계기는, 아끼는 제자 '새라(공재경)'의 방문입니다.
정인 부부는 새라를 딸처럼 여기며 깊은 애정을 표하고, 새라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짧은 귀국길에도 짬을 내어 시골집을 방문하지요.
하지만 손님이 있건 말건 이웃집 남자는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새라는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손님에 불편해하다 결국 먼저 일어섭니다. 자신에게 오롯이 시간을 내주지 않는 스승에 대한 실망을 남기고요.
제자가 표한 실망에 정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합니다. 존경만 받아오던 스승에게 제자의 실망은 위선의 껍데기를 벗어던질 정도로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정인은 이웃 남자를 때려눕히고, 제자에게 전화해 자신의 승보를 전하겠다 소리치는데요.
정인의 가짜 자신이 위선이라면, 정인의 진짜 자신은 오만입니다.
영화에서 오만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매일 오후 네시에 방문하는 이웃입니다. 상대의 사정은 무시하고 상석에 앉아 차를 내오라 명하지요.
이 오만한 이웃은 또 하나의 정인입니다. 정인의 진짜 자신을 상징하는 존재예요. 둘의 집은 거울에 비친 것처럼 똑 닮은 외관을 지녔고, 심지어 엔딩에서는 하나처럼 보이지요. 위선의 집은 정성스레 꾸며졌고, 오만의 집은 잡초투성이긴 하지만요.
진짜 자신을 알게 된 정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위선은 위선대로 남고, 오만이 더해졌을 뿐이에요. 스스로 진짜 자신을 보지 못했을 뿐, 사실 그의 모습은 전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위선과 오만이 합쳐진 정인은 이웃을 제멋대로 재단합니다. 그 결과, 저 불행한 이웃을 자신이 죽여줘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다다르지요. 그리고 위선과 오만의 결과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겁니다.
영화 정보
관람 정보
- 12세 이상 관람가(폭력성, 대사, 공포)
- 쿠키 영상 없습니다.
예고편
관람 기록
- 오후 네시
- 4 PM
- 롯데시네마 기흥 7관
- 2024년 10월 23일
- ★★★ 감추고 가두어도 사라지지 않는 진짜 자신
이미지 출처 : CGV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