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소일기」 감상
오프닝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옥상에 올라가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거든요. 아이가 화면에서 사라지며 음악도 뚝 끊기는데, 순간 제 심장도 뚝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난간 밖의 공간으로 넘어간 것뿐이었지만요.
안심도 잠시, 그다음 장면이 또 씁쓸합니다. 큰 소리로 외치는 내용이,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며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이라서요. 차라리 크게 싸운 친구나 공부만 하라는 부모님에 대한 비난이었다면 마음이 좋았을 것 같아요.
이 슬픈 꼬마는 ‘정요우제(황재락)’입니다. 이름의 뜻은 ‘남들보다 뛰어나다’인데, 실제는 또래만 못한 아이인 것 같습니다. 연주회를 열 정도로 피아노도 잘 치고 학업 성적도 좋은 한 살 어린 동생 ‘정요우쥔(하백염)’과 비교가 되어 더욱 안타깝지요.
요우제는 홍콩대에 진학해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 피아노 강사 천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학생들을 이해해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제, 영화의 시점은 고등학교 교사 ‘정 선생님(노진업)’으로 넘어갑니다.
어른이 된 정 선생님은... 아쉽게도 천 선생님 같은 선생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리 다르지 않지만, 아이들을 이해하거나 아이들과 소통하는 법은 모르고 있네요.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게 나름 마음을 쓰며 이야기를 건기도 하지만 제3자가 보기엔 틀렸어요. 아이가 은근슬쩍 감추는 비밀도 뚫어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정 선생님의 학급에서 유서 같은 편지가 발견됩니다.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며, 대부분의 시간에 죽음을 생각하고 있고, 내가 죽으면 모두는 곧 나를 잊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편지의 주인을 찾아 동분서주하던 정 선생님은 불현듯 어린 시절 일기를 떠올립니다. 편지와 일기는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거든요.
그리고 영화는, 학생의 자살을 막으려는 정 선생님의 현재와 숨겨뒀던 아픈 과거의 회상을 오가게 됩니다.
어린 요우제의 일기는 편지 형태를 고 있습니다. 당시 편지의 대상은 일기였지만, 관객에겐 시간을 넘어 보내는 편지같이 느껴집니다. 어린 요우제가 무엇이 힘들고 슬펐는지, 누구에게 위로를 받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시간을 넘어 들려주는 것 같지요. 몸은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아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정 선생님에게요.
요우제는 어떤 편지를 보냈는지, 정 선생님은 이를 잘 소화하고 성장했는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하나 더 얘기하자면. 영화에서 옥상은 중요한 장소입니다. 일종의 비밀 기지로 어린 요우제가 숨을 틔울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숙제를 도와주는 대가로 동생 요우쥔에게 이곳을 알려주고, 둘은 함께 아이답고 형제 다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모든 일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린 요우제는 이 옥상에 오르는 계단에서 고개를 내밀고 위를 바라봅니다. 어른이 된 정 선생님은 옥상에 오르다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바라봤죠. 시간을 넘어 둘의 시선이 마주친 것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구성도 좋고 내용도 좋은 영화입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많이 들릴 정도로 슬프고, 동시에 화도 나는 내용인데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가장 마음이 아프네요. 영화가 남긴 희망이 현실에도 빛을 발하길 바랍니다.
엔딩 크레딧 노래가 있습니다. 자막도 붙어 있어요. 형제가 서로 대화하는 가사로 봐도 무방할 테고, 영화가 끝나고 감상적인 분위기에 다시 한번 마음을 울리는 노래입니다. 2절까지 있으니 마지막까지 즐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정보
관람 정보
- 15세 이상 관람가(주제, 폭력성, 모방위험)
- 쿠키 영상 없습니다.
예고편
관람 기록
- 연소일기
- Time Still Turns the Pages
- 롯데시네마 기흥 6관
- 2024년 11월 14일
- ★★★ 시간을 넘은 대화는 이해를 남기고 미래로 향한다
이미지 출처 : CGV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