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노라」 감상
‘현실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영화를 본 후 첫 감상이었습니다. 젊고 예쁜 아가씨가 사랑을 타고 계급 상승을 노리는 신데렐라 스토리인데, 설정과 흐름은 동화적인 맛이 전혀 없는 현실판이거든요.
특히 ‘아노라(마이키 매디슨)’가 흥미롭습니다.
뉴욕에서 스트리퍼로 일하고 있는 아노라는 사회의 바닥에 있는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기구한 가정사 따위는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위치와 대조되는 착하고 순수한 성품도 아니지요.
오히려 자신의 입장과 위치를 이해하고, 허용된 범위 안에서 주도권을 잡을 줄 아는 예리한 인물입니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아가씨’라 그 자리에 왔음에도 자신은 영어가 편하다며 꼿꼿이 영어를 사용하고, 천천히 즐기는 것이 좋다며 상황을 리드하고, 큰 보상의 계약 제안에도 여유롭게 줄다리기를 합니다. 언제나 유쾌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요.
아노라는 이런 자신의 강점을 백분 발휘하여 재벌 2세 ‘이반(마르크 예이델시테인)’을 사로잡고 결혼까지 다다르지만, 그 위로 가지는 못합니다. 동화라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났겠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았죠.
영화를 보면서 엔딩이 그리 아름답지 않으리란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계급이나 문화 차이를 떠나 아노라와 이반의 사랑은 그리 진실해 보이지 않거든요. 자극적인 놀이에 가깝죠.
돈을 받고 계약 연애를 하던 시절과 사랑의 서약을 한 결혼 생활, 둘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결혼이라는 정점을 지나자 아노라의 강점은 점점 사라집니다.
상황을 판단하며 밀당을 하던 영리함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둔함으로 바뀌고, 네가 나에게 맞추라던 당당한 요구는 요청으로, 애원으로, 구걸로 점점 낮아져 갑니다. 후반 신경질적이면서도 간절한 아노라의 외침과 불안한 표정에 마음이 복잡해져요.
예쁜 외모와 육체적 쾌락은 전자게임 한 판에 밀리고, 그녀에게 기회를 준 러시아어조차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혹은 경멸스러운 저급한 것이 됩니다.
그녀를 빛나게 했던 것들이 탈출구라 여긴 높은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영화는 우러러보던 그곳이 사실 얼마나 낮은지 역설합니다.
뭘 하길래 이렇게 잘 사는지 묻는 아노라에게 이반은 자기소개 대신 자신의 아버지 ‘니콜라이 자하로프(알렉세이 세레브랴코프)’의 이름을 알려줍니다. 이반이 가진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니까요.
하지만, 자하로프가의 실질적 권력자는 이반의 어머니 ‘갈리나(다리야 예카마소바)’입니다. 가정을 대표하던 니콜라이는 갈리나 옆에 조용히 앉아있다 그녀가 곤경에 처하자 유쾌한 듯 껄껄 웃을 뿐이죠. 권력의 실체란 이런 것이라 말하는듯한 장면이었습니다.
중간책인 ‘토로스(카렌 카라굴랸)’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으로, 코 뼈가 부러진 동생보다 자기 차에 쏟아진 오물이 걱정입니다. 그가 식당의 젊은이들에게 늘어놓는 설교는 지극히 모순적이라 웃음이 납니다.
한편, 아노라처럼 바닥에 위치한 ‘이고르(유리 보리소프)’는 유일하게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상대의 구혼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확인을 하던 아노라. 그럼에도 결국 고개를 끄덕인 것은 부유한 생활뿐만 아니라 이반이 속삭이는 사랑의 맹세가 그 무엇보다 달콤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털털거리는 차량 배기음으로 끝나는 엔딩은 참 애틋하면서도 텁텁했습니다.
영화 정보
관람 정보
- 청소년 관람불가(선정성, 대사, 약물)
- 제7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 쿠키 영상 없습니다.
예고편
관람 기록
- 아노라
- Anora
- 롯데시네마 기흥 5관
- 2024년 11월 9일
- ★★★☆ 화려한 꿈부터 참을 수 없는 울음까지, 아노라
이미지 출처 : CGV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