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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출장 2004 모음

출장 때 드문드문 찍었던 사진입니다. 당시 출장은 대체로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많습니다. 주말 없이 한주에 하루나 두 주에 하루씩 쉬었을 때라 사진도 별로 없어요. 그 후 '그나마 이때가 좋았다'라고 생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요 ㅎㅎ


프랑스 니스

다들 부러워하는 휴양지로의 출장이지만 평생 다시없을 최고로 배고픈 출장이었다. 유난히 식사에 얽힌 일화가 많다.

유명 휴양지다 보니 호텔비가 비쌌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돈으로는 좋은 곳은커녕 평균 이하밖에 갈 수 없었다. 결국 예약된 곳은 작은 호텔로 조식도 불포함.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려면 따로 2만원 정도를 내야 했다.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라 동네 빵집에서 빵을 사다 먹었다. 재미있는 건, 내가 먹어본 출장 아침 식사 중 가장 맛있고 기억에 남는 아침이 바로 이거다. 프랑스 동네 빵집에서 아침에 막 구운 크루아상은 진짜 예술이었다.

하늘부터 땅까지 다 파랗던 니스의 저녁 해변

일은 협력사에서 했고, 점심도 협력사 식당에서 먹었다. 회사는 산 꼭대기에 있었고, 회사 식당은 사내에서 가장 위치가 좋은 곳에 있었다. 식당 테라스로 나가면 바로 앞으로 바다와 니스 전경이 보였다. 이런 곳에 사장실이 아니라 사원 식당이 있다는데 우린 다들 문화충격이라며 시끌시끌.

문제는 저녁. 협력사는 출입이 까다로운 곳이었다. 서구권 회사답게 5시가 되면 식당이고 까페고 다 문을 닫는다. 하지만 저녁을 먹으러 회사 밖으로 나가면 출입 문제 때문에 사실상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가 없다. 늦게까지 일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라 5-6시에 퇴근해서 저녁 먹고 끝낸다는 건 말이 안 됐고, 결국 밤까지 일하다 가급적 빨리 퇴근해서 저녁을 먹는 쪽으로 흘렀다. 퇴근하면 보통 9-10시 근방인데 그 시간이면 호텔 근처 식당도 모두 CLOSED. 그나마 늦게까지 문을 여는 중국식당에 신세를 많이 지고, 후반에는 늦게까지 하는 식당거리를 알아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보였던 프랑스 식당, 가 보진 못했다.

점심식사부터 저녁식사까지 간격이 길기 때문에 간식을 좀 사 두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출근하는 시간에는 문을 연 마트가 없어! 두 번째 문화 충격. 얘들은 대체 언제 일하는 거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가끔 출근시간을 늦춰서 마트 개점과 동시에 들어가 비상식량을 구비하곤 했다.

최고의 저녁은 협력사에서 배달시켜준 피자. 사람수보다 많은 피자 박스가 들어오고, 각 피자 크기는 아무리 봐도 라지.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우리들을 앞에 두고 협력사 사람들, 너무 자연스럽게 인당 한판씩 피자를 가져간다. 세 번째 문화 충격.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는 휴일이 있었다. 하루는 모나코에 놀러 갔는데 왠지 사진이 하나도 없다;;

배고팠던 출장이지만 싫은 기억은 하나도 없는 출장이기도 하다. 첫 해외 출장에, 우리 팀만 소규모로 나갔고, 협력사도 좋은 사람들뿐이라서 였을 듯.

 

독일 프랑크푸르트

첫 대규모 출장. 황량한 곳에 우뚝 서 있는 대여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주위에 있는 식당이라고는 맥도날드 하나뿐.

초반에는 차를 타고 나가서 외식도 종종 했다. 맛집 리스트를 찾은 덕분에 차례로 식당을 돌며 여러 가지 메뉴를 먹었다. 특산물이라는 애플 바인(사과 와인)은 오묘한 맛이라 이게 뭔가 하기도 했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득한 한적한 동네에 동양인들이 가득 찬 벤츠 3대가 들어간 덕분에 끝없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가족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직원들이 다들 너무 친절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식사 후에는 잠깐씩 산책도 하고, 출장을 오니 이렇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점심먹으러 간 식당이 있던 마을

하지만 언젠가 갑자기 출장을 나온 상무 한 분이 우리가 외식하러 간 걸 발견하고, 출장이냐 놀러 왔냐 크게 화를 내는 바람에 이후로 외식은 금지. 그러고 정작 본인은 골프 치러 가선 돌아오지 않더라. 덕분에 한동안 어느 팀이든 그분 뒷담으로 화재 만발이었고, 결국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경질. 소문으로는 다른 프로젝트로 가서 미국판 올드보이 사건(출장자들을 호텔에 잡아두고 식사 때마다 본인이 피자와 햄버거를 사서 조달)을 일으켰다고...

외식이 금지되니 갈 수 있는 곳은 맥도날드 뿐이라, 맥도날드 세트 1번부터 23번이던가까지 차례로 한 번씩 다 먹었던 것 같다. 후반엔 맥도날드에 완전히 질려서 한 명이 대표로 나가 버거킹 햄버거를 포장해 오기도 했다. 이 기억 덕분에 한국에 와서도 한동안 맥도날드는 절대 가지 않았지.

타이 레스토랑, 진짜 맛있었다! 근데 음식 사진은 하나도 안 찍었구나!

참고로 출장 때 보통 벤츠는 못 빌리는 차다. 다만 독일은 렌트비가 싸서 다른 나라보다 하나 더 좋은 급수의 차를 빌릴 수 있었다. 그게 벤츠 E클래스. 내게는 관심 외의 일이었지만 차를 좋아하는 동기, 후배들은 이번엔 벤츠 모모 모델을 빌리니, BMW를 빌리니 하며 난리였다. 시속 200km를 달려본 것(정확히는 그런 차에 타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 우리보다 더 빨리 달리는 커다란 오토바이 할아버님들 무리도 보고. 아우토반, 지금 생각하니 조금 무서웠을지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웃긴 일화가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밖이 시끄러워져서 내다보니 경찰차가 와 있었다. 현관은 계속 소란스럽고 우리가 있는 방도 경찰 아저씨가 잠깐 들여다봤다. 별다른 얘기 없이 금방 나가길래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주위에 사는 시민이 우리가 수상하다며 경찰에 신고를 했단다. 그 시민이 본 우리 모습은 대충 이런 거였다.

청바지에 티셔츠 같은 가벼운 차림의 동양계 애들 다수가 사무실 빌딩에 드나든다. 걔들은 벤츠나 BMW 같은 고급 차종을 몰고 있고, 아침 일찍 들어가면 자정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식사 시간에도 거의 나오지 않고, 주중과 주말의 구분도 없다. 가끔 남자들이 빌딩 밖으로 나와 삼삼오오 스모킹을 하는데, 아무래도 동양 애들을 잡아놓고 마약을 만들게 하는 것 같다!

경찰이 들어와 확인을 해 봤지만 컴퓨터랑 각종 전자 장비밖에 없는 사무실. 해킹 같은 범죄면 모를까 마약 제조는 아닌 게 확실하긴 한데, 경찰도 우리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자정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어쨌든 그 후로도 우리 출장 생활에 큰 변화는 없었고, 그저 담배를 필 때는 모여서 피지 말 것, 쭈그리고 앉아서 피지 말 것이라는 규칙이 생겼다.

구비구비 찾아갔던 맛집 중 하나, 밥집인줄 알았는데 술집?

하루 휴일이 있어서 로텐부르크에 다녀왔는데 여긴 사진이 꽤 많으니 별도로 포스팅.

 

영국 런던

그래도 사람답게 먹었던 출장이었다. 출장의 기준에 자꾸 식생활이 등장하는 건 당시 그만큼 못 먹은 출장이 많아서다. 출장을 간다 하면 햇반이랑 컵라면이 필수였고, 볶음 고추장이랑 밑반찬도 만들어 갔다. 출장 경험이 늘어나면서 봉지라면을 가져가 현지에서 전기포트를 사서 냄비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가서 뭘 사 먹기에는 출장비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했다.

런던 출장은 다른 팀과 얽힌 게 많아 제대로 하루를 쉰 적이 거의 없다. 내 기억으로는 하루는 좀 일찍 끝내줘서 빅벤 쪽으로 나갔다. 대관람차 런던아이를 타고 싶었는데 이미 종료. 근처를 구경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끝.

영국에서 일했던 대여 사무실 애비 하우스(Abby House) 근처에는 식당이 좀 있었다. 가장 자주 먹은 건 바로 옆 헬스장 안에서 파는 샌드위치. 근처에 White Horse라는 펍 겸 식당도 있었고, 좀 걸어가면 럭셔리한 중국 식당도 있었다. 게다가 애비 하우스에서는 커피와 우유가 무료로 무제한 제공됐다. 하루에 두세 번씩 새 우유를 채워줘서 기적의 냉장고라 불렀다. 하다못해 설탕도 종류별로 일반 설탕, 덜 단 설탕, 더 단 설탕, 자일리톨이던가 설탕 대체품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이것도 당시엔 문화충격급.

애비 하우스 근처는 주택가였는데 봄여름에는 다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놔서 산책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겨울에 다시 출장을 가니까 마녀의 집 수준으로 황량해져서 놀라기도 했다.

런던에는 우리 회사 법인이 있었다. 법인 사무실은 런던 시내에 있었는데 이쪽으로 출근하면 회사 밥(한식)도 먹을 수 있고, 근처에 식당도 많고 마트도 많아서 꿈의 사무실이라고도 불렸다. 자리가 부족해서 특별히 연관 일이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곳. 우리 팀은 언제 안 불러주나 내심 기대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법인 사무실에 간 건 하루 뿐이었다. 법인으로 간 날은 저녁으로 탄투리 치킨을 먹고 마트에 들러 초콜릿이랑 간식거리를 쓸어 담았던 기억이 난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당시에는 과장 없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상황이라 나름 필사적이었다.

 

덤으로 끼운 미국 출장

달라스 2003, 2004

사진이 한 장도 안 남아 있다. 아마 두 번 갔을 텐데 두 번 다 숙소부터 식사까지 상당히 좋았던 출장으로 기억한다. 출장 기간이 각각 2주, 1주 정도로 짧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니스의 피자 이상으로 음식량에 대한 충격을 받은 기억도 있다. 산처럼 먹고 디저트가 나오는데 푸딩이 대용량 잼병 같은데 담겨 나오더라. 보기 전에는 푸딩 좋아해서 먹고 싶다고 했는데 샘플을 보고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라 포기했다. 협력사에서 대접해줬던 식사로 그쪽에선 포장해가도 된다고 괜찮으니 시키라는데... 싸가도 다 못 먹고 남을게 뻔한 음식을 시키기는 죄스러워서 패스.

협력사 사무실이 너무 좋아서 정말 부러웠다. 두 곳을 갔는데 한 곳은 개발자마다 3면 이상이 막힌 개인 칸막이 방을 자유롭게 쓰고 있었다. 커다란 모니터도 보통 3대씩 쓰고 있고. 개발자라면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 또 한 곳은 유럽계 회사라 그런지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장애인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복도 곳곳엔 그림이 걸려있고, 카페트나 벽 색상도 화사했다. 디자인 회사라고 해도 믿을만한 분위기. 덕분에 우리는 언제 미색 벽과 진녹색 파티션에서 벗어날지 부질없는 논의를 하기도 했다.

 


출장은 대체로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일도 많았고, 어쩌니저쩌니 해도 인생의 큰 부분이고 큰 경험이었습니다. 이후로도 출장은 많이 갔습니다만, 2004년에 세운 1년간 해외 출장 110일의 기록은 아직 깨지 못했습니다. 당시엔 저보다 많이 저보다 길게 출장을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지금와선 평생 써먹을 농담거리가 됐어요.

다시 가라면 가고 싶지는 않은, 그야말로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고생 덩어리 같던 출장이 이렇게 추억으로 회자되는건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어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