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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히가시노 게이고 저 / 양윤옥 역 / 현대문학 출판


두 곳의 온천지에서 영상 프로듀서와 무명 배우가 황화수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우연한 사고라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고

고의에 의한 사건이라기에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현장의 상황이다.

라플라스의 마녀가 일으킨 죽음일까?

과연 이것은 사고일까 사건일까?


 

사전 정보 없이 작가와 제목만 보고 고른 책입니다. 일단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제목에서부터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풀풀 풍기지요. 내용물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말이 나올 만큼 술술 읽히는 소설입니다. 크고 작은 역할을 가진 여러 명의 캐릭터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서술하기에 번잡하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쉽게 읽히는 것만은 변하지 않더군요.

주요 서술자는 자연과학 교수인 아오에 슈스케입니다. 온전치 특유의 황화수소 발생에 의한 불운한 사고라고 추정되는 만큼, 경위 확인과 위험 조사를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아오에 교수에게 의뢰했기 때문입니다. 아오에 교수는 두 건의 사망 사고가 사고인지 사건인지 고민하는 주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학자다운 호기심으로 진실을 찾아 나가는 존재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우하라 마도카라는 소녀와 아마카스 겐토라는 소년. 이 둘의 과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두 번의 사고를 거쳐 결말에 이르기까지, 전모가 보일 듯 말듯하게 이어져 가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아마도 이런 부분일 거로 생각합니다. 뒷이야기가 예상될 만큼 실루엣을 일찌감치 보여주지만, 그 세세한 부분이 어떨지 상상하며 이야기를 읽어가는 재미가 있어요. 어렸을 때 만화영화를 보며,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다음 화가 너무 기다려져 안절부절못했던 경험이 떠오르네요.

두툼한 책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옆에서 앗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니 아이 엄마가 급히 페트병을 붙잡는 참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페트병 안의 내용물이 길게 흘렀다. 아마 사내아이가 페트병을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아오에는 그 여학생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테이블에 내려놓은 스마트폰을 20센티미터쯤 옆으로 옮겼다. 딱히 다급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액체가 테이블에 퍼지고 있었다. 여학생이 앉은 쪽으로도 흘러갔다. 하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으로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저러다가 자칫 스마트폰이 젖어버릴 것 같아 아오에가 도리어 속이 탔다.
하지만 그 여학생의 스마트폰은 무사했다. 닿기 바로 직전에 액체의 흐름이 멈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학생이 미리 조금 옮겨두지 않았다면 분명 젖었을 터였다.
스모크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마치 거대한 흰 뱀이 이동하는 것처럼 나무 틈새를 지나고 풀 위를 기어 아오에 쪽으로 다가왔다 놀랍게도 꿈틀꿈틀하면서도 스모크의 폭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확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마침내 스모크는 아오에의 발치에 도달했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직후였다. 스모크는 그가 있는 지점을 통과하는 일 없이 그 자리에 고이기 시작했다. 흰 연기가 눈 깜작할 사이에 아오에의 온몸을 휘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