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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교토 2004

모종의 이유로 준비 없이 급하게 다녀온 오사카 여행입니다. 출장지에서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하고, 사전조사고 뭐고 없이 출발 당일 공항에서 오사카 여행 가이드북과 여행 일본어 책을 사 들고 출발했습니다. 첫 일본 여행인데 정보도 계획도 없는 막무가내 여행이었지요. 결과적으로 그런 현실에 비해 알차고 즐거웠던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간사이 국제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호텔로 가는 것. 난바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열차 종류가 여러 가지였다. 라피트 알파, 라피트 베타, 공항 특급. 내가 탈 열차는 공항 급행. 플랫폼에 내려가니 라피트가 서 있었는데 창문 위치가 낮아서 좀 놀랐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경치를 구경하기 좋을 것 같아 다음 여행 때는 저걸 타봐야지 생각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아직 못 타봤지만.

호텔이 역 근처가 아니라 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역에서 내려 알려준 출구로 나가니 도심인데도 의외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다행히 헤매지 않고 한번에 호텔까지 도착. 이 호텔은 '영어 사용자도 환영하는 호텔' 목록에 있는 곳이었다. 애초에 이런 목록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지만... 영어 사용자 환영인만큼 데스크 직원도 유창하게 안내를 해 줬다. 방을 배정하고, 인터넷 사용법과 아침은 어디서 먹는지도 알려줬다.

호텔 방은 놀랄만큼 작았다. 침대 발치에 벽 선반을 설치하고 그 위에 TV를 올려놨더라. 그래도 탁자와 의자, 옷장, 금고 등 갖출 건 다 갖췄다. 옷장에는 샤워가운...이라고 하긴 애매하고 간단하게 걸칠 수 있는 얇은 일본식 가운도 걸려있다. 동양 호텔답게 슬리퍼도 구비!

방은 작지만 호텔은 꽤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역과의 거리도 가깝고, 주위 환경도 조용한 편이었다. 인터넷도 잘 되고, 물도 잘 나왔다. 발이랑 TV가 너무 가까워서 불안한 마음은 조금 있었지만.

 

시내 교통

매일 이용한 역은 신사이바시(心斎橋) 역이였는데, 첫인상으로는 승강장도 그리 넓지 않고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역이었다. 하지만 이건 오후 시간에 이용해서 느꼈던 착각일 뿐! 다음 날 아침에는 출근시간이 겹치며 전쟁터가 벌어져 있었다. 문을 닫기 위해 지하철 안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 일을 하는 직원이 진짜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도저히 그 난리통에 끼어들 각오는 없어서 천천히 벤치에 앉아 열차를 몇대인가 지나 보냈다. 물론 그다음 날부터는 아예 출근시간이 지난 후 나왔고.

도쿄에 비할바는 안 된다지만 오사카도 만만치 않게 지하철 노선도가 복잡했다. 정확히는 노선 그 자체보다는 갈아타는게 어려웠다. 오사카 역 같은 경우는 통과하는 지하철과 열차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다. 정신 차리고 내가 탈 노선을 찾아가지 않으면 금세 길을 잃게 된다. 안내판을 보고 따라가다 잘못 왔다는 걸 깨닫고 유턴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심지어 사람이 많아서 방향을 돌려 반대편으로 가는 행렬에 합류하는 것도 쉽지 않다.

티켓은 간사이 스루 패스 3일권을 이용했다. 오사카를 포함한 간사이 지역의 상당히 넓은 범위를 3일 동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다. 오사카 시내는 물론, 공항과 교토, 나라, 고베까지 커버한다. 물론 가격도 그만큼 비싸지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일본은 각 노선마다 요금을 따로 계산해야 했기에 매번 티켓을 끊기엔 너무 복잡했다. 심지어 도착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티켓이 나오는 게 아니라 직접 금액을 계산해서 맞는 금액권을 뽑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데 하나하나 신경쓰고 싶지 않아서 스루 패스로 결정.

 

오사카

분위기

오사카에서 좀 의외였던 건 그다지 외국에 온 느낌이 안 난다는 거였다. 여기저기 보이는 고가도로 때문에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냥 사람들 모습이 비슷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특이하다고 생각했던건 대형 건널목. 4거리 같은 곳에 방향 없이 아무렇게나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역시 비슷해 보이는지 다들 일본어로 말을 걸어온다. 길을 물어보시는 분도 있었고, (아마도) 설문 조사를 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이 코인락커 어떻게 쓰는 거냐는 질문도 받았다. 당황해서 영어로 답을 했더니 상대는 더욱 당황해서 몇 번씩 미안하다며 사라져 갔다. 휴지 나눠주던 분은 '그냥 받아가도 되는데...'라는 얼굴로 잠시 망설이긴 하더라.

그리고 난바 시티의 옥상 정원! 건물 외곽을 따라 층층이 정원이 꾸며져 있다. 공원이랑은 다른 맛이 있는, 도심 속 숲이라는 분위기였다.

 

음식

오사카는 관광보다는 음식을 먹었던게 더 기억에 남는다. 오사카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관광지를 별로 못 간 탓도 있었다.

유명한 타코야끼 가게에 갔더니 줄을 길게 서 있었는데 먹어보니 그럴만한 맛이었다. 막 만들어서 더 맛있었을지도. 함께 주는 이쑤시개로 집어 들어도 찢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는 과장이었지만.

지나가다 적당히 들어간 라면집도 맛있었다. 자판기에서 원하는 요리 티켓을 사서 주방에 가져다주는 형태였다. 자판기로 주문을 한다는걸 몰라서 잠시 방황했는데 앞서 티켓을 사던 분이 알려주셨다. 국물도 진하고 뭣보다 쫄깃하면서도 꼬들한 면이 맘에 들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도 한 번 사 먹어봤는데 나무 젓가락을 잔뜩 넣어줬다.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젓가락 더 달라고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뜻'이라고 하더라. 생각해보니 진짜 점원이 일본어로 젓가락 몇 개 필요한지 물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으니 충분히 넣어준 건가 싶기도 하다. 계산할 때 물건 바코드를 찍으면서 하나하나 제품명과 가격을 읊는 게 신기했다. 예를 들면 '삑- 치킨 데리야끼 도시락 650엔입니다, 삑- 생수 129엔입니다' 같은 느낌.

 

교토

볼거리

교토에서 큼직하게 잡은 일정은 금각사랑 료안지, 그리고 청수사였다.

금각사(金閣寺)는 이름 그대로 금박이 입혀진 절이었다. 날이 좋아 햇빛에 금색이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멀리서 보는 쪽이 더 운치가 있고 좋았다. 금각사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다고 한다. 록원지(鹿苑寺), 한자 그대로면 '사슴 동산 절'인데 꽤나 귀여운 이름 아닌가!

 

료안지(龍安寺)는 돌과 모래, 이끼로만 꾸민 정원으로 유명했다. 흰 자갈로 된 바닥 위에 15개의 돌이 있는데 배치 탓에 어디서 봐도 한 번에 15개를 다 볼 수 없다고 한다. 돌의 위치로 우주를 표현했고, 사람의 한계를 인식하며 도를 닦는다는 등의 설명이 있었다. 한 방향으로 깔끔하게 골라져 있는 자갈이 재미있다.

나오는 길에는 쓰쿠바이(蹲)라는 동전모양 약수터(?)가 있었다.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입과 손을 닦는 곳이라고 한다. 위치가 낮아서 이용하려면 허리를 굽혀야 하고, 그래서 이름이 쓰쿠바이 = 웅크림. 동전의 4방에 쓰여 있는 한자들은 각각은 의미가 없지만 합쳐서 읽으면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의미가 된다고.

 

청수사(清水寺)에는 정말 사람이 많았다. 벼랑으로 아슬아슬하게 나와 있는 대형 난간이 인상적인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한쪽에는 3줄기 물이 내려오는걸 긴 국자로 받아 마시는 곳이 있었다. 각각 학문, 건강 같은 소원을 들어주는 물줄기인데 하나만 마셔야 효과가 있다나.

 

분위기

교토 안에서는 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교토의 버스도 스루 패스로 이용 가능. 해외에서 버스 이용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인포메이션에서 받은 노선도가 정말 훌륭했다. 버스 기사님이 매번 문 열립니다, 닫습니다, 출발합니다, 정지합니다, 좌/우회전합니다 등을 직접 방송했다. 신기하기 그지없다.

버스에 사람이 적고 한산할 때는 분위기도 매우 여유로웠다. 손님이 앉은 후 출발하고, 버스가 선 후 내릴 손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모습이 진짜 부러웠는데 사람이 많아지니까 또 얘기가 달라지더라. 만원 버스 비슷하게 되면서부터는 손님이 앉을자리도 없거니와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내릴 사람은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 미리미리 사람을 헤치고 나와 문 앞에서 대기하거나 손잡이를 잡지 못해 흔들리는 등 꽤 익숙한 모습이 보여서 재미있었다.

 

음식

교토에서 식사는 뭐랄까, 좀 애매했다.

오래되고 유명하다는 빵집에서 기대하고 샀던 카레빵은 기대 이하. 만화에 카레빵이 자주 나와서 기대했는데 그냥 카레 고로케였다. 게다가 고로케치고 맛도 별로. 생각해보니 고로케 같은 빵은 학생들이 많은 동네 빵집이 더 맛있을 것 같기도 하다. 카레빵에 대한 로망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점심은 전통 도시락이랄까 정식 같은 걸 먹었는데, 동그란 찜통에 각종 채소가 예쁘게 들어있었다. 밥과 국은 따로 나오고. 먹어보니 간도 거의 없이 살짝 찐 채소인 것 같다. 그야말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라는 느낌의 요리였다. 채소도 싱싱하고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정도로 적당히 익은 게 나름대로 신경 쓴 요리인 것 같았다. 아니, 가격이 꽤 나갔으니 그렇게 생각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원래 싱겁게 먹는 편이라 나름대로 맛있게 잘 먹긴 했는데... 인상이 흐리달까. 매일 먹는 밥으로는 좋겠지만 여행의 한 끼로 먹기엔 좀 아쉬운 식사. 그래도 몇 번이나 괜찮은지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보셨던 친절한 점원 아주머니가 기억에 남아 있다.

 

간식으로는 차랑 당고를 먹었다. 녹차는 정말 좋았는데, 당고가 조금... 맛이 없다기보다는 예상외의 맛이었다. 보기엔 달콤한 떡일 것 같은데 먹어보면 짭짤한 간장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달콤한 디저트를 기대했는데 그냥 단짠도 아니고 간장 맛이 느껴지니 기분이 묘하다. 떡 자체도 우리나라 떡이랑은 좀 달라서 쫀쫀한 맛이 없고 끈적한 느낌이 강하다. 익숙한 비주얼인데 완전히 다른 맛이 나니 묘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