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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투어 2007

할머니와 함께했던 LA에서 출발하는 미국 서부 패키지 투어. 끝없이 뻗어있는 길과 박학다식한 가이드의 끝없는 썰이 인상적이었던 여행입니다. 관광지 간에 거리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가이드님이 관련 지식도 풍부하고 얘기도 무척 재미있게 하셔서 이동 시간이 지루한 줄 모르고 다녔었어요.


그랜드 캐니언

첫 목적지이자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 그랜드 캐니언의 어떤 점이 그리 인상 깊었냐고 물으면 바로 생각나는 건 단연코 규모. 웅장한 대자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을 정도니까.

다만 이 규모에 대한 실제 느낌을 말이나 사진으로 전달하긴 참 어렵다. 유명한 곳인 만큼 사진이나 영상으로 여러 번 봤지만, 현지에 실제로 섰을 때 받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방문객 센터에서였나, 그랜드 캐니언에 관한 전시물 중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랜드 캐니언에 대해 남긴 말이 쓰여 있었는데 그 말 그대로다.

Leave it as it is. You cannot improve on it.
지금 그대로 남겨두라. 우리가 더 좋게 만들 수 없다.

그랜드 캐니언에는 여기저기 계곡 아래로 걸어서 내려갈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고 한다. 브라이트 앤젤 트레일, 사우스 케밥 트레일, 림 트레일 등 여러 코스가 있고, 걸리는 시간도 당일 가볍게 갈 수 있는 곳부터 텐트에서 숙박하며 며칠씩 걸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맛보기로 잠깐 내려가는 정도였는데, 등산과는 반대로 내려간 후에 올라오는 코스라 체력안배를 잘 하지 않으면 올라올 때 정말 힘들다며 가이드가 미리 주의를 줬다. 본격적으로 가면 내려가서 배를 타고 빠져나갈 수 있는 코스도 있지 않을까?

독특한 느낌의 전망대도 있었다. 첨성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안에 들어가서 밖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가까이서 보면 여러 색의 돌을 쌓아 만들어서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일정에 경비행기 투어랑 아이맥스 영상 관람이 있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서 경비행기 투어는 취소되고 영상만 봤다. 계곡 안팎을 비행하며 촬영한 경관 영상이랑 보트를 타고 그랜드캐니언을 탐험했던 역사적 이야기가 주 내용으로 나름 흥미진진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평이 갈리더라.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쯤, 하늘에 커다란 새 같은 구름이 보여서 한 컷.

 

브라이스 캐니언

붉은색 첨탑 같은 지형이 매력적이었다. 지층 색도 다양하게 펼쳐져 있고, 대비되는 푸른 소나무와 하얀 눈까지 더해져서 장관이었다. 덕분에 다들 정신없이 사진찍기 삼매경으로...

첨탑처럼 솟아있는 바위를 후두(Hoodoo)라고 한다는데, 바다에서 만들어진 지형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여기 바다랑 상당히 멀 텐데? 바닷속에서 토양이 층층이 쌓여 암석을 이루고, 점점 융기하며 흐르는 물에 토양 일부가 깎여나가면서 이런 모양이 됐다고.

 

자이언 캐니언

다른 협곡처럼 전망대에 가지 않고 길을 따라 지나가며 본 자이언 캐니언. 중간중간 멈춰서 잠깐씩 구경을 했는데 굉장히 독특한 곳이었다.

처음에는 바둑판처럼 얼기설기 얽혀있는 표면이 인상적이었고,

다음에는 물감이라도 흘린 듯한 묘한 색이 눈에 들어왔다. 보는 시간에 따라 바위 색이 달라 보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붉은 빛의 암석.

거칠고 단단한 느낌이다. 브라이스 캐니언의 첨탑이 두터워지면 이렇게 될까? 브라이스 캐니언은 여성적이고, 자이언 캐니언은 남성적이라던 설명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오후 늦게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바로 나오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화려한 불야성의 도시라는 인상만은 강하게 남았다. 각자 개성을 뽐내는 호텔과 밤이 되고 새벽이 되도 꺼지지 않는 조명에 어디든 있는 도박장까지.

 

캘리코

마지막 일정은 폐광촌을 관광지로 꾸민 캘리코. 몹시 내 취향! 마을 규모가 크진 않지만, 진짜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한창 시절의 탄광 마을을 재현한 게 아니라 폐광촌을 컨셉으로 한 모양이다.

물통이나 구유 등 소품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가게를 포함한 각종 건물도 옛날 분위기가 살아있다. 감옥 같은 옛 건물도 억지로 되살리지 않고 기분만 내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 장면에서 어색한 건 관광객뿐!

그리고 보안관! 멋쟁이 보안관 아저씨가 마을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멋진 분위기를 내며 사진도 찍어주고, 오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기도 하고.

관광 열차나 고스트 투어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니 자유여행으로 왔다면 좀 더 길게 머물렀을 법한 곳이다. 시간이 충분했으면 마을 주점에서 맥주라도 한잔 하고 싶었어.

 

마치며

여행에서 이동하는 길이 대부분 서부 영화에 나올법한 건초사막이었다. 넓은 사막에 가로등도 없는 길이 끝도 없이 뻗어 있고, 주위에는 건초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풍경. 게다가 한참 자다 일어나도 버스 창밖 풍경은 똑같고 해 위치만 높아져 있는 여행이라니, 상상도 못 해봤는데 말이다.

함께 여행한 울 할머니가 연세가 있으셔서 걱정이었는데, 다들 신경을 써 주신 덕분에 도리어 편한 여행이 되어 버렸다. 관광지에서 할머니는 이미 많이 와 본 곳이라며 종종 차에 남아계셨는데, 그때마다 기사님이 말벗이 되어 주신 것 같다. 아주 좋은 사람이라며 칭찬을 엄청나게 하시고, 여행 말미에는 팁도 많이 주라고 하셨을 정도 ㅎㅎ

오랜만에 사진을 다시 보니 새삼 그립다.